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처음엔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불안할 뿐이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빨리 취업해야 될텐데... 영영 취업 못하면 어떡하지?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마음 속 가득해졌다.
그리고 직장에서 짤린 후 6개월이 지난 얼마 전,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이 폭발해버렸다.
급한 마음에 15개 정도 원서를 냈었는데, 연락이 거의 없었다. 내가 쓸모없는 존재로 느껴지고 '살아서 뭐하지' 하는 생각이 마음 가득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죽고 싶을 때는 너무 힘들 때 보다도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인 것 같다.
더 이상 미래가 기대되지 않고, 세상에 대해서 궁금한 게 없을 때 애써 잡아왔던 끈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얼마 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털어 놓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단지 의사 선생님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의사 선생님은 이 자체를 엄청나게 심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아,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상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 이후에 5곳에서 면접 제안이 몰려왔다. 뭐지...?
그런데 사실 나는... 면접 공포증이 있어서 면접 제안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 지난 면접을 돌이켜 봤을 때 너무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면접이 다가올수록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너무 불안해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고, 이를 의사 선생님에게 털어 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을 또 심하게 받아들이셨다. 내 면접 공포증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 면접이 너무나 두려울 것 같다.'고 호응해 주셨다. 이전 의사 선생님은 '면접을 더 많이 보면 면접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셔서 면접이 부담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준비하려고 노력했고, 꾸역꾸역 면접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면접이 그렇게 싫으면 면접을 포기해라. 그 회사가 지금 아니면 못 갈 회사냐? 아니면 다음에 괜찮아졌을 때 다른 회사에 가면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싫으면 안해도 된다니... 어떻게 해서든 면접 공포증을 극복해서 면접을 보려던 나에겐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리고 수 천 번의 고민 끝에 5군데 면접 모두를 안보기로 결정했다. 결정은 했지만 막상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또 바뀌고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만 내 정신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불참 연락을 돌렸다. 면접을 보는 것도 어렵지만 모든 면접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치만 적어도 죽고 싶다거나 죽을만큼 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내 증상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신 게 나름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증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시니 '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이 정도로 심각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할 건 포기하라고 말씀해 주셔서 사실 좋았다.
어떤 일 때문에 죽을만큼 괴롭다면 제일 먼저 고려해야할 것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그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다면 학교나 직장을 포기하는 걸 먼저 고려하길 바란다. 학교 안다닌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직장 그만둔다고 해서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다. 우울감에 빠져 있다면 정신과에 방문해서 약물 복용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집 근처 정신과에 방문하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각자의 방식으로 도와줄 것이고, 내 경험에 의하면 약물을 통해서 상황이 나아질 여지가 매우 많다. 살기 힘들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로부터 멀어지면 된다. 나도 결정 내리는 게 쉽지 않았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에는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요새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중에 '무조건 칭찬하는 방'에 며칠 동안 들어있었다. 시험을 망친 중학생, 취준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채팅방의 목표가 '진심으로 칭찬하기'였다. 개인적으로는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고민과 그에 대한 칭찬을 보면서 조금의 용기를 얻었다.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지.'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고민들이 그 때는 정말 산더미 만하게 커서 나를 짓눌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를 괴롭게 하는 이 고민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 땐 그랬지' 하며 되새길 수 있는 추억이 될까?
면접을 안보기로 정하고 나서 나는 새로운 미래를 조금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는 블로그 키우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몸담아 온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갖는 것이다. 면접이 두렵고 회사 다니는 게 두렵다면 알바를 하면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온라인으로 돈을 더 벌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니 의외로 또 다른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삶을 포기하려던 이름 모를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걸 포기하게 된다면 그걸로 너무나 기쁜 일이 되겠다.
나를 포기하는 게 제일 억울한 일이다.
부디 나처럼 정신과 의원을 찾아 가서 진료를 받거나 상담 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길 바란다. 나도 처음엔 정신과에 찾아가는 게 너무 어려웠고, 정신과에 간다는 건 내가 미쳤다는 건가 싶었지만... 정신과 병원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10000배 쉬운 일이고, 나를 포기하는 것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걸 포기하는 게 1000배 쯤 쉬운 일이다.
얼굴 모르는 누군가가 당신을 응원하며 글을 써 보았다.
다음 편에서 내가 어떤 방법을 통해 나아졌는지에 대해 계속 써보겠다.
https://282-ground.tistory.com/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