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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고등래퍼2를 보고 나를 돌아보다.

by 생생한 정보통 2018. 6. 1.

나는 다양한 음악 장르를 즐기는 편인데 유독 힙합에는 흥미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영어를 화난 듯 잔뜩 쏟아내는 본토 랩(?) 그렇고, 오빠가 차를 뽑아서 데리러 온다는 랩도 그다지 반가운 느낌은 아니었다.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 랩이 포함되는 건가. 잘 몰라서 동의어처럼 쓰게 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느끼기에 힙합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평소에 말하는 발음보다 둬 미국물 뭐균 누뀜으뤄 봘움하뉘꽈 과장됐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서로 다 내가 제일 잘 났다 하는 문화도 나랑은 왠지 안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김하온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온통 난리가 났을 때도 역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차에서 고등래퍼2 노래 몇 곡을 듣고 나서는 ‘어, 이건 뭔가 다르네?’ 싶었다. 힙합에서 왜 리코더 소리가 나지ㅋㅋㅋㅋ 쀠쀠쀠 삐뷥 쀠ㅃ쀱 쀠빕쀱
심지어 삑사리가 섞인 리코더 소리야ㅋㅋㅋ 얘네는 고딩이라 초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그리고 내가 거부감을 느끼던 구뤈 허쉐 스웩은 많이 안느껴지고 뭔가 말에 멜로디가 있고 리듬감도 있고 강약이 있고 귀에서 걸리지 않고 술술 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고등래퍼2 인기곡을 몇 곡 찾아봤더니 아, 가사도 달랐다. 그동안 이런 곡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얘네가 하는 랩은 듣기 좋은 만큼 깊이도 있었다. 이런!!


노래를 몇 번 찾아 듣다가 이런 랩을 하는 애들은 어떤 애들인지 궁금해 져서 고등래퍼2를 3화 정도까지 봤는데, 깜짝 놀랐다.
일단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하던 래퍼의 모습이 없었다. 흔한 래퍼들처럼 체인을 칭칭 감고 검은 옷들에 스냅백, 허세허세 느낌이 아니었다.

꿀벌같은 애가 나와서 명상 얘기를 했고(읭?), 왠지 만화에서 본 것 같은 앞머리로 눈을 가린 애가 나와서 과묵했고, 아빠 옷 뺏어 입고 온 것 같은 애가 있었다. ㅋㅋㅋㅋㅋ 그 친구 심지어 18세라고ㅋㅋㅋㅋ 내 친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데..미안. 아무튼 고딩들이라 그런지 순수하고 솔직해서 좋았다. 복어마냥 나를 부풀리면서 없는 것까지 있는 척하려는 래핑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그저 담담하게 꺼내놓는 모습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놀란 점은 많은 고딩들이 자기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등래퍼2에 나온 많은 친구들이 그랬지만 특히 이로한이면서 배연서이기도 하다는 친구의 노래를 듣고 그 부분이 와 닿았다.

세상 사는 거 나만 힘든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행복해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별로 없고 해야되는 일들만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힘든 일들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힘든 일들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그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고 걸어간다는 것. 정말 멋진 삶의 자세이고 내가 그동안 살면서 제대로 갖지 못한 모습이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존경스러웠다. ‘저 친구들은 아직 어리니까 많이 도전해보고 실패도 해 볼 수 있는거지’라는 생각 뒤에 잠시 숨기도 했지만 나이가 적다고 도전이 쉬운 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금새 들었다. 나는 고딩 때 너무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에 혼란스러웠고 그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계속 그런 기분 속에서 떠다녔다. 그러다 보니 이성적/ 객관적으로 내 안을 바라보기 어려웠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마주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친구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네.

그렇지만 나도 근 1년 사이에 나 자신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알아가고 있다. 이전에 수박 겉핧기 식으로 나에 대해서 알았다면 지금은 그 수박에 검은 줄무늬가 어떤 모양이고, 수박 씨는 몇 개나 있는지 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렇게 늦게 알아차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나이와 상관 없이 인생의 어느 길에서나 자기가 갈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환경적으로 나를 가로막는 게 없는 상황이니까 내 의지에 따라서 길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생각과 의지,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믿음을 계속 가져가야지.

두 개의 발이 있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고, 그렇게 가다 보면 어제와 다른 나의 오늘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다시 곱씹어 봐도 멋지네. 2000년 생이라는 이 어린 친구가 하는 이 어려운 일을 나도 마음 먹으면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용기가 생긴다.

자기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건, 특히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건 정말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그런데 사실 누구나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깨고 앞으로 나가겠다는 어린 친구들의 의지를 더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의 소중한 꿈,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내 꿈 모두를 응원하며 꿈꾸러 가야지.

고등래퍼2 배연서 - 이로한
Youtube 링크를 걸었으니까 다들 들어보면 좋겠다.​